목회자의 편지(443)
2011년
5월 6일
복음의 자유를 누리는 사람
『천로역정』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유명한 그리스도인이 해석자의
집에 들어갑니다. 큰
방에 들어가 있는데 그 집 하녀가 들어와서 빗자루를 가지고 막 방을 쓸기 시작합니다. 그러
니까 먼지가 일어나 방 안이 자욱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하녀는
미련하게 계속 씁니다. 쓸
면 쓸수록 더 깨끗해지는 것이 아니라 먼지만 계속 일어났습니다. 얼마
후 뒤에 있는 한 사
람이 거기에 물을 끼얹습니다. 그러니까 먼지가 다 잦아지고 깨끗하게
쓸렸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귀한 통찰을 줍니다. 여기에서 <큰 방>은 인간의 마음을 뜻합니다.
<먼지>는
우리의 죄를 의미합니다. <빗자루>는 율법을 상징합니다. 빗자루로 쓸면 쓸수록 먼
지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 나옵니다. “일찍 일어나라. 올바른 사람이 되어라. 시간을
지켜라. 착한 일을 해라. 마감
전에 일을 끝내라.” 그렇게 율법주의적인 생각은 우리 자신에
게 말을 합니다. 좋은 말로 훈화하기도 하고, 듣기 싫은 잔소리로 야단치기도 합니다.
경건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게 살 수 없는 나 자신을 보면서 한숨이 나옵니다.
모범생처럼 살고 싶은데, 아니 솔직히 말하면 모범생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마음으로는 이
미 가출하여 방황하는 아이입니다. 착하게 살라는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 마음이 삐딱해
집니다. 하지 말라는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더 하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갈등합니다. 선과 악
이 내 속에서 내 마음을 찢어놓습니다. 죄를 지으면 안 된다는
명분이 우리 자신을 숨막히게
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양심이 민감해질수록 나는 더욱 괴로워하는
죄인이 됩니다. 순결하
게 살고 싶은 처녀일수록 순결을 잃어버린 슬픔이 무겁습니다. 이상적인
사람일수록 현실의
나는 걸레처럼 망가집니다.
그렇게 일어나는 먼지를 가라앉혀주는 것은 물입니다. 물은 복음입니다. 진리입니다. 예수님
은 복음이고 진리입니다. 우리는 복음에 의해서 예수님을 만나고, 죄 사함을 받습니다. 예수
님을 만나면 우리 마음이 밝아집니다. 도덕과 윤리가 실패한 곳에서
복음은 시작됩니다. 인간
의 노력과 의무감이 한계에 부딪힌 그 지점에서 복음은 시작됩니다.
불행한
일은 교회에 출석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복음과 도덕의 차이를 모릅니다.
내
노력이나 종교심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과 그 공로로
구원받았다는 말을 반복해서 듣지만, 삶에서 여전히 율법주의적인 생각에 지배당합니다.
신약성경에서 가장
큰 갈등은 예수님과 율법주의자들인 바리새인들과의 갈등입니다.
복음이냐 율법이냐? 인간의 노력이냐 하나님의 은혜냐? 믿음으로 구원받느냐
노력해서 구원받느냐? 내 힘으로 사느냐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느냐?
죄책감만 일으키며 살 것이냐, 죄로부터 자유하게 살 것이냐? 사람을 기쁘게 할 것이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냐? 얻기 위해 살 것이냐, 이미 얻은 은혜를 누리며 살 것이냐?
주님 안에서 복음의 자유를 누리는 그 사람(?)이 얼마나 행복합니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이기범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