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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5 | 인생의 위기는 왜 오는가?

Spokane Church

2012.05.15

목회자의 편지(444)                                                                             20115 13

 

  인생의 위기는 왜 오는가?   

 

 

정태기목사님은 『위기와 상담』에서 어느 불쌍한 노부부 이야기를 합니다. 아들 딸 3남매를

애지중지 키워 온 노부부가 아들 며느리들이 모여 서로 부모를 모시지 않겠다고 싸우는 소리

를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순식간에 이 부부의 마음속에 한겨울 눈보라가 몰아쳤습니다.

인간은 자기가 사랑해야 할 대상이나 자기를 사랑해 주어야 할 대상이 자기를 버린다고 생각

될 때, 겨울의 위기 속에 빠져듭니다. 아들 며느리들이 귀찮은 존재로 여기는 것을 아는 순간

부모의 마음과 몸은 얼어붙기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삼일 후 어머니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내까지 잃어버린 아버지는 더욱 추위를 느꼈습니다. 삼일 후에 아버지마저 심

장마비로 세상을 하직했습니다. 의사의 진단은 심장마비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마음과 몸이

얼어서 죽은 동사자임에 틀림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인생에서 얼어 죽을 것 같은 추운 겨울을

겪지 않고 지나갈 수는 없습니다. 이런 시기를 위기라고 합니다. 저자는 현대인들이 모두

이런 위기에 처했다고 진단하면서 이런 위기가 온 이유를 네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 현대인들의 위기는 하나님을 떠난 데서 왔다고 진단합니다. 사람은 육체가 아니라 그의 영혼이 본질인데, 인간의 영혼은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함께 살 때라야만 진정한 안정과 평안을 누리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도시화 속의 현대인들은 마음속에서 하나님이 떠난 버린 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는 하나님 대신 돈과 물질, 권력과 명예욕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은 인간 영혼에 참된 생명력을 주지 못합니다.

정신과 의사 칼 융(C. Jung)은 그를 찾아온 중년 환자들이 예외 없이 자기 영에 상처입은 사람들이었다고 말합니다.

 

(둘째) 현대인들의 위기는 참 만남의 상실에서 왔다고 말합니다.

사람은 가족들과의 관계에서 자라서,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살다가 죽는데, 이렇게 관계의 의지(Will-to-Relate)를 지닌 사람이 그 관계가 탄력을 잃게 되면 병이 된다는 것입니다. 1991년 시카고의 한 초등학교 예를 들면, 한 학급의 75%가 파괴된 가정의 아이들이었습니다. 100명 가운데 25명만이 정상적인 가족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미국이 마약으로 병들고, 산업이 기우는 이유가 가족관계가 무너진 데 그 원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 병든 사회구조에서 온다는 것입니다. 정치 지도자를 신뢰할 수 없을 때, 국민의 마음에는 위기의식이 자리잡습니다. 경제인들이 자신들의 이익만을 생각하고 노동자나 국민의 복리를 무시할 때도 절망과 분노의 감정과 더불어 위기의식을 느낍니다. 학생이 선생을 존경하지 못하고, 선생이 학생을 사랑할 수 없는 교육이 행해지고 있다면, 가슴과 가슴이 만나고 혼과 혼이 만나서 불꽃을 튀기는 인격적인 교육의 현장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선생은 오로지 몇 줄 지식만을 전달하고, 학생은 그런 선생을 장사치 정도로 취급하는 교육현장이 우리의 현실이라면 그야말로 나라 전체가 심각한 위기상황입니다.

 

(넷째) 자연 생태계의 파괴현상입니다. 플라스틱 가루에 씨를 심으면 몇 년이 지나도 싹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줌의 흙 속에 씨를 심으면 생명의 싹이 납니다. 1970년대 후반부터 하루에 30, 1년에 1만여 종의 생물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위기에 처한 우리가, 우리를 창조하시고 다시 회복시켜주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구원받은 피조물, 이기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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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6 | 복음의 자유를 누리는 사람

Spokane Church

2012.05.06

목회자의 편지(443)                                                                              201156

 

  복음의 자유를 누리는 사람  

 

 

『천로역정』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유명한 그리스도인이 해석자의 집에 들어갑니다.

방에 들어가 있는데 그 집 하녀가 들어와서 빗자루를 가지고 막 방을 쓸기 시작합니다. 그러

니까 먼지가 일어나 방 안이 자욱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하녀는 미련하게 계속 씁니다.

면 쓸수록 더 깨끗해지는 것이 아니라 먼지만 계속 일어났습니다. 얼마 후 뒤에 있는 한 사

람이 거기에 물을 끼얹습니다. 그러니까 먼지가 다 잦아지고 깨끗하게 쓸렸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귀한 통찰을 줍니다. 여기에서 <큰 방>은 인간의 마음을 뜻합니다.

<먼지>는 우리의 죄를 의미합니다. <빗자루>는 율법을 상징합니다. 빗자루로 쓸면 쓸수록 먼

지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 나옵니다. “일찍 일어나라. 올바른 사람이 되어라. 시간을

지켜라. 착한 일을 해라. 마감 전에 일을 끝내라.” 그렇게 율법주의적인 생각은 우리 자신에

게 말을 합니다. 좋은 말로 훈화하기도 하고, 듣기 싫은 잔소리로 야단치기도 합니다.

 

경건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게 살 수 없는 나 자신을 보면서 한숨이 나옵니다.

모범생처럼 살고 싶은데, 아니 솔직히 말하면 모범생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마음으로는 이

미 가출하여 방황하는 아이입니다. 착하게 살라는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 마음이 삐딱해

집니다. 하지 말라는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더 하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갈등합니다. 선과 악

이 내 속에서 내 마음을 찢어놓습니다. 죄를 지으면 안 된다는 명분이 우리 자신을 숨막히게

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양심이 민감해질수록 나는 더욱 괴로워하는 죄인이 됩니다. 순결하

게 살고 싶은 처녀일수록 순결을 잃어버린 슬픔이 무겁습니다. 이상적인 사람일수록 현실의

나는 걸레처럼 망가집니다.

 

그렇게 일어나는 먼지를 가라앉혀주는 것은 물입니다. 물은 복음입니다. 진리입니다. 예수님

은 복음이고 진리입니다. 우리는 복음에 의해서 예수님을 만나고, 죄 사함을 받습니다. 예수

님을 만나면 우리 마음이 밝아집니다. 도덕과 윤리가 실패한 곳에서 복음은 시작됩니다. 인간

의 노력과 의무감이 한계에 부딪힌 그 지점에서 복음은 시작됩니다.

 

불행한 일은 교회에 출석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복음과 도덕의 차이를 모릅니다.

내 노력이나 종교심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과 그 공로로

구원받았다는 말을 반복해서 듣지만, 에서 여전히 율법주의적인 생각에 지배당합니다.

 

신약성경에서 가장 큰 갈등은 예수님과 율법주의자들인 바리새인들과의 갈등입니다.

복음이냐 율법이냐? 인간의 노력이냐 하나님의 은혜? 믿음으로 구원받느냐

노력해서 구원받느냐? 내 힘으로 사느냐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느?

죄책감만 일으키며 살 것이냐, 죄로부터 자유하게 살 것이냐? 사람을 기쁘게 할 것이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냐? 얻기 위해 살 것이냐, 이미 얻은 은혜를 누리며 살 것이냐?

 

주님 안에서 복음의 자유를 누리는 그 사람(?)이 얼마나 행복합니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이기범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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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9 | 다른 사람의 허물을 보았을 때

Spokane Church

2012.04.29

목회자의 편지(442)                                                                            2011429

 

  다른 사람의 허물을 보았을 때  

 

 

 

우리에게는 내 힘으로 고치기 힘든 허물이 있습니다. 신체적인 결함인 경우도 있고, 나쁜 습관이나 정신적인 연약성인 경우도 있습니다. 성격이 지나치게 의존적이거나 강박성, 편집성, 공격성, 불안정, 콤플렉스, 매사 부정적인 경향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언어가 오염되어 욕을 많이 하는 분도 있습니다. 시간관념이 약한 분도 있고, 책임감이 희박해서 어떤 일을 맡지 못하는 분도 있습니다. 이런 장애나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하며 기도한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인내할 수 있는 힘을 주시고, 때가 되면 고쳐주십니다.

 

른 사람의 허물 때문에 내가 힘들고 고통받는다고 느낄 때가 있으신지요? 그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십니까? 한 두 번 참다가 적당한 때를 골라 충고하는 편입니까? 아니면 끝까지 참고 인내하는 편입니까? 회사 동료라면 몰라도 만약 가족이라면 우리는 좀 더 많이 부딪힐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좋은 말로도, 나쁜 말로도, 자신의 허물을 쉽게 고치지 못하는 연약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등을 돌리거나 무관심한 사람일지라도 우리는 이런 문제를 하나님께 맡겨버려야 할 것입니다. 부부간이나 자녀와 심각하게 다툰다 해도 고쳐지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내 눈에는 쉽게 고칠 수 있는 문제로 보일 지 몰라도 상대방에게는 전혀 문제가 안 되거나 고치기 힘든 문제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 저에게 결함이 많고, 이것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지는 않은지요? 저의 허물 때문에 주위 사람들이 인내하고 있는지요?라고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완전하기를 요구하면서도 사실상 나 자신의 결점은 고치려 들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이나 결점은 엄하게 다루어지고 고쳐지기를 바라면서도, 나 자신은 남들로부터 간섭받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나를 원하는 모습으로 바꿀 수 없거든 하물며 다른 사람을 내가 좋아하는 대로 만들 수 있을까요?

 

남아프리카에는 낮은 범죄율로 유명한 <바벰바> 부족이 있습니다. 바벰바 부족은 누군가 잘못을 저지르면,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그 사람의 주위에 둘러섭니다. 그리고 한 사람씩 차례대로 그 사람이 이전에 베풀었던 선행을 말해 준다고 합니다. 처벌해야 할 죄인을 칭찬하는 것이지요. 과장하거나 농담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칭찬 릴레이가 끝날 즈음이 되면 죄인은 흐느끼기 시작합니다. 그 때 마을 사람들은 죄인을 따스하게 안아줍니다. 그의 죄를 용서하며 위로하고 격려합니다. 이런 시간을 보내고 나면, 사람이 바뀌어 다시는 죄를 짓지 않는다고 합니다. 바벰바 부족의 범죄율이 낮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 모두에게 부탁합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한 형제처럼 사랑하며, 한 마음으로 서로 따뜻이 대하며, 겸손하십시오. 해를 입었다고 도로 보복하지 말며, 욕을 먹었다고 그 사람을 욕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 삶을 축복해 주십시오. 이것은 여러분 자신이 축복받는 인생을 누리도록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베드로전서 3:8-9. 쉬운 성경)

 

                                                         연약한 질그릇, 이기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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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5 | 가정을 위한 기도

Spokane Church

2012.04.15

목회자의 편지(441)                                                                            2011415

 

  가정을 위한 기도

 

 

 

『멋진 남편을 만든 아내』라는 책을 쓴 이영애씨는 그 책의 마지막에 가정을 위하여라는 시를 썼습니다. 이 시는 가정사역 축제세미나가 열리는 이번 주간 내내, 아니 행복한 가정을 꿈꾸는 일년 내내,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고 또 드리고픈 기도의 내용입니다. 성도님들께서도 이 기도를 읽고 또 읽으시며 기도해주시기를 당부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를 들어주셔서 스포켄의 가정들이 치유되고 행복해지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고마우신 하나님 아버지!

이 아름다운 계절에 우리에게 가정을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가정은 비오는 날의 우산이며, 뜨거운 태양 밑의 양산입니다.

가정은 지친 등산객에게 베이스 캠프이며,

거친 파도에 시달린 항해사들에게 안식의 항구와도 같습니다.

가정은 엄동설한에 찾을 움막집입니다.

이 곳에서 우리는 안식하고 비를 피하고,

더위를 식히며 정서적 산소를 공급받습니다.

그러나 지금 자연재해를 당하듯이 가정이 붕괴되고 무너지고 있습니다.

 

주여!

가정은 당신이 제일 먼저 만드신 기관입니다.

당신이 창조주이시고 설계사가 되십니다.

우리에게 설계도를 보여주십시오.

어느 곳에 보수가 필요한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보수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겐 도구는 있습니다.

그러나 보수하는 능력은 당신에게 있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주여!

대장장이에게 도구가 들려질 때, 참된 회복과 치유와 재건이 있습니다.

깨어진 가정을 감싸주시고, 흩어진 가정이 하나되게 하옵소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어두운 세상에 하나의 등대와 촛불이 되게 하옵소서.

이 목마른 여정에 하나의 샘물이 되게 하옵소서.

이 방황하는 세대에 하나의 나침반이 되게 하옵소서.

풍성하고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도구로

우리 모두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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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08 | 요코이 동굴 이야기

Spokane Church

2012.04.08

목회자의 편지(440)                                                                            201148

 

  요코이 동굴 이야기

 

 

하나님께서 휴가를 보내주신다면 가보고 싶은 곳이 있습니다. 남태평양의 괌(Guam)이라는 섬입니다. 가보지는 못했지만 인터넷을 통해 바닷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맑은 바다와 하얀 모래사장, 야자수 그늘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 곳에 가면 <요코이>라고 하는 작은 동굴이 있다고 합니다. 1972년 거기서 한 노인이 발견되었습니다. 마을에서 떠도는 소문에 따르면 뒷산 동굴 근처에 사람 모양의 짐승이 산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그 노인이었습니다. 이름은 쇼이치 요코이. 나이 58. 직업은 일본 군인.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일본 나고야에서 징집되어 괌에 배치되었다가 거기서 홀로 30년을 살아온 겁니다.

 

왜 그랬을까요? 30년이라는 긴 세월을 그는 왜 동굴속에서 외롭게 살아온 것일까요?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나오기가 두려워서, 사람들 만나기가 무서워서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세상 소식도 전해 듣지 못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지 벌써 30년이 흘렀지만 이 노인에게는 종전 명령이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전쟁 중인 줄 알고, 산에서 내려오면 죽는 줄 알았습니다. 소식이 전해지지 않아서, 한 번뿐인 소중한 인생을 그렇게 살았던 것입니다.

 

이 분 너무도 불쌍하지 않습니까? 너무도 어처구니 없는 현실 아닙니까? 잃어버린 30년 세월. 떠나버린 청춘. 기다리던 가족들이나 친구들은 기다리다 지쳐서 세상을 떠난 분도 있을 것입니다.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다는 이 한가지 때문에 그렇게 비참하게 산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아직도 이런 분들이 있지는 않을까요?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소식을 전해 듣지 못한 분들이 혹시 없을까요? 예수님께서 나를 만나시기 위해서 먼 곳에서 오셨고, 나의 죄를 다 용서해주셨다는 놀라운 소식을 전해 듣지 못한 사람이 혹시 없을까요? 여전히 죄책감과 우울증에 빠져서 슬픈 음악만을 즐겨 듣는 그런 사람이 없을까요?

자기 앞에 보이는 현실이 전부인 것처럼 알고, 나를 위해 세워놓으신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전해 듣지 못해서 희망없이 살아가는 불쌍한 영혼이 혹시 있으면 어떡하죠?

 

주께서 하신 말씀이다. “반드시 나의 백성이 나의 이름을 알게 될 것이다. 그 날이 오면, 반드시 나의 백성은 내가 하나님이라는 것과 내가 그들에게 말한 하나님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놀랍고도 반가워라. 희소식을 전하려고 산을 넘어 달려오는 저 발이여!

평화가 왔다고 외치며, 복된 희소식을 전하는구나. 구원이 이르렀다고 선포하면서, 시온을 보고 이르기를 너의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하는구나.(이사야52:6-7. 표준새번역)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는 부활절 아침에,

이기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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